김일도(전남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김일도(전남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올해 학교는 학생들의 교무학사를 처리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먹통으로 한바탕 곤란을 겪었습니다. 약 2,824억을 들인 사업임에도 많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진정되어 오류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사업 초기에 교육부에서 설명했던 기능들이 다 빠진 반쪽짜리임을 확인하고 허탈한 상황입니다.

혹자는 학교는 왜 이렇게 변화에 둔감하고 행정절차가 복잡한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 원인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 시스템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하여 학교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례1>

중간놀이 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어 업무포털을 열어서 공문함을 살펴본 이 모 교사는 한 공문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제목은 ‘교내 CCTV 설치현황 보고’입니다. 수년간 교내 정보부와 학생부, 행정실 간에 다툼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정보통신기기이니 정보부라는 의견과 학교폭력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찾아보는 학생부가 해야 한다는 의견, 시설 분야는 행정실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대립으로 교육청에서조차 중재를 못 하는 업무입니다. 문제는 매년 보고한 자료가 있음에도 또 매년 엑셀로 조사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자료를 남겨두고 공유하면서 업데이트만 수시도 이뤄져도 훨씬 수월하겠으나 교육청이부서별로 각자 자료를 요구하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매월 30일 이내에 영상정보가 삭제되었는지 기록을 남겨야 하며 담당자가 바뀌면 매번 홈페이지에 공지도 해야 합니다.

 본인의 담당 기간에 녹화기라도 바뀌면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기기라 공고문을 올리고 심의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정도의 업무는 여러 업무 중의 아주 간략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유튜브는 시청자의 패턴을 분석하여 추천 영상을 노출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CCTV 구축현황에 대한 자료공유도 못 하는 학교와 교육청에서 빅데이터 구축한다는 말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사례2>

전세로 떠돌던 윤 선생님, 드디어 아파트 청약에 도전합니다.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했더니 내가 청약통장을 언제 만들었는지, 아파트 매매 이력은 없는지, 배우자의 거래 이력이나 청약 당첨 이력은 혹시 없는지 상세하게 다 나옵니다. 내 청약통장에 입금된 금액이 얼마인지, 어떤 평형까지 가능하지도 안내해줍니다. 다 입력하고 나니 주의사항과 부적격처리 가능성을 안내하고 공인인증서로 전자서명까지 마쳤습니다.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종이를 통한 안내도 대면 거래도 전혀 없습니다.

다음날 윤 선생님은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격리된 학생들의 목록과 증빙서류를 챙겨서 내부 결재를 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학습도 신청서와 보고서를 따로 한 장씩 스캔하여 건별로 내부 결재를 합니다. 이 문서를 하나씩 넘기며 나이스 출결 상황과 맞는지 한 명씩 확인합니다.

다 끝내고 나서 윤 선생님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이스가 모바일로 구현되면 좋겠다.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결재를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과정중심평가 누가기록을 내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평가 보조기록부를 보고 나이스에 다시 적는 것은 너무 기동성이 떨어지지 않나? 학부모가 스마트폰으로 출결 상황을 입력하면 담임선생님이 승인처리만 할 수는 없나?’

생각을 마친 윤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내가 상상이 지나치구나.

<사례3>

오늘 홍 선생님은 화가 납니다. 3월 초에 교내 와이파이 접속 방법을 전체 선생님께 공지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태블릿 PC나 노트북이 80대씩 한두 해 보급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IP 할당이 가능한 253대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습니다. 급한 대로 통신실에 가서 장비를 껐다가 다시 켜면 어떤 태블릿은 접속이 되기도 합니다. 3월에 몇몇 교직원의 요청으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공개하였더니 수업용 태블릿이 접속하기도 전에 학생들과 교직원의 스마트폰이 자리를 잡아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육청에 연락했더니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IP를 추가로 할당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제한된 용량 안에 교사용, 학생용(컴퓨터실), 무선 공유기용 회선을 공유하다 보니 기가급 무선공유기를 설치하고도 제 용량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태블릿이나 노트북 같은 무선장비 숫자가 유선 장비에 연결된 컴퓨터 숫자를 추월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장비의 사양으로는 우리 반 전체 학생이 다 접속이 가능해야 하지만 접속이 안 된다는 학생들이 자꾸만 나옵니다. 

언제까지 홍 선생님은 매번 접속이 떨어지는 몇몇 태블릿을 위해 스마트폰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꾸고 테더링을 켜야 할까요?

<사례4>

학생 수보다 태블릿 PC 숫자가 많고 노트북 숫자가 더 많았던 도서벽지 S초등학교에 근무했던 김 선생님은 근속연한이 다 되어서 인근 학교로 전근하였습니다. 학교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규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요.

학생들이 태블릿 PC 화상통화 앱으로 도시의 학교와 도농교류 수업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모야모앱으로 식물 이름 찾기가 유행일만큼 많은 학생이 디지털 기기를 잘 활용하는 학교였습니다. 물론 김 선생님이 학교 안에서 활용 방법에 대한 연수도 열심히 했고 스마트교실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문제도 있었습니다. 더러 액정이 깨지기도 했고 몇 대는 분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A/S 기간은 이미 끝났고 고치려 보니 중고기깃값보다 비싸서 더러 몇 대는 방치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교장 선생님께는 말씀드렸고 열심히 활용하고 사용하다가 그런 것인데 괘념치 말고 더 열심히 쓰자고 하셨지요.

전근해 온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3월 전임 S초등학교에 새로 전근해 오신 선생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스마트교실에 태블릿이 2대 모자라는데 올해 종합 감사가 있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화를 내시며 기존 업무담당자가 책임져야지 왜 그냥 두고 갔느냐고 하셨다고도 하고요. 결국 한 대씩 중고나라에서 구매해서 넣어놓기로 합니다. 출시된 지 오래된 모델이라 15만 원 정도에 동일 모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코로나19로 감사가 간소화되어 기기실셈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 선생님은 다짐합니다. 열심히 가르치고 꺼내어 쓴 결과가 이거구나. 앞으론 열심히 잠그고 열쇠는 손에 꼭 쥐고 있겠다. 숫자가 모자라면 문제가 되지만 꺼내쓰지도 않고 방치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디지털 기기들, 누가 문제일까요?

학생들이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에 힘을 얻는 사람이 교사들입니다. 최신의 스마트기기와 오래된 교육철학이 공존하는 공간이 학교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관성처럼 버티고 있는 각종 규제와 행정이 때로는 힘이 빠지게도 하지만 학생들의 교육이라는 목표 하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부디 교육행정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차차 바뀌어 가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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