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구술채록조사 용역을 통해 ‘여순10·19항쟁’으로 명명

순천대 여순연구소, 71명의 증언 채록하여 700여 페이지 보고서 제출

 

순천시가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와 함께 여순 10·19항쟁 구술채록조사 사업을 마치고 71주기에 맞춘 71개의 증언을 700여 페이지 보고서 형태로 엮어냈다. 공식화된 학문적 기록에 개인의 체험과 기억에 따른 미시사가 더해지면서 여순10·19항쟁 에 대한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은 지자체인 순천시가 직접 나서서 여순10·19항쟁 증언 채록에 나섬과 동시에 용역사업 명칭을 통해 그동안 여순사건으로 통칭되던 역사를 ‘여순10·19항쟁’이라 고 명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천시는 지난 4월 24일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와 여순10·19항쟁 구술채록조사 용역을 체결하고 24개 읍·면·동에서 여순10·19항쟁 시작부터 한국 전쟁기까지를 경험하거나 피해를 입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구술채록을 실시했다. 
이번 구술채록을 이끈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최현주 소장은 “피해 당사자들이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치유와 상 생의 역사로 나아가는 물꼬가 트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의의를 부여하며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역사 속 대립과 갈등은 먼저 개개인의 가슴에 맺힌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풀린 후에야 가능하다고 본다.”면서 이번 증언채록이 지역민의 아픔을 치 유하는데 우선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술내용의 역사적 해석과 분석에 참여한 박병 섭 연구원은 “여순10·19항쟁은 오랜 동안 발설이 금기시되어 왔고 71년이 지나서 경험자 및 피해자 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까닭에 이같은 구술 채록이 시급한 상태였다.”라면서 순천시의 적절한 역사 규명 노력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최종결과보고서는 집단학살 관련 증언들과 손가락총에 의한 희생, 산사람과 군경이 밤과 낮을 번갈아가며 마을을 장악해 피해를 보았던 사례들이 주를 이룬다. 피해자들이 겪은 일상화된 구타와 가혹한 고문의 기억, 남겨진 유가족들의 궁핍하고 어려웠던 삶에 대한 사연들이 기록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겼다. 

낙안 신전마을에서는 14살 좌익 연락병이 경찰의 협박에 못 이겨서 한 손가락질에 의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부상당한 자신을 도와주었던 마을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로 인해 3살부터 60세에 이르는 2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총살당했다는 증언이다. 또 마을 앞에 용(用)자 깃발을 세워 두고 좌익 마을이라는 표시를 해두었다는 주암면 오산마을은 죄없는 마을 사람 8명이 당산나무 아 래에서 한꺼번에 총살당했다고 기록된다. 해룡면 도롱마을에서는 마을 전체가 양편으로 나뉘어 죽음의 보복을 이어가며 오랫동안 갈등의 골을 안고 살았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구장회의한다고 불러들인 구장 12명을 진압부대였던 백골부대가 월치재에서 모두 총살하고 암매장한 사건까지 역사의 참상이 생생하게 채록되어 있다.  

▲ 여순사건 당시 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가 목포형무소에서 사형 당한 사연을 간직한 황전면 발산 마을 표지석

감수를 맡은 주철희 박사는 “기억이란 각자의 필요나 감정에 의해 왜곡되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증언을 역사적인 것들과 면밀하게 대조하는 작업이 추가되어야 한다.”면서 앞으로 채록된 증언에 구체성과 명확성을 더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순천시는 이번 구술 데이터베이스가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역사·문화 콘텐츠 구축에 활용 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는 올 한해 채록한 증언들을 모아 여순10·19항쟁 증언록 <나 죄 없응 께 괜찮을 거네 2>를 곧 발간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