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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 사가꼬 묻어주면 소원이 없어”

기사승인 [201호] 2019.09.26  12: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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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소설가

   
 

홍순례 씨는 현재 96세로 1924년 부모님 사이에서 2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상사면 서정리에 살면서 처녀 때 ‘일 년 배우고 졸업 탄 학교’에서 재를 넘어 다니며 공부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상사면 오곡리 오산 마을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열두 살 위로 신부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양가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은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1년 후 신부도 따라갔다.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고향으로 가야 아이가 생긴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귀향, 곧 아들을 낳았다. 


1948년 가을. 당시 남편은 그지없이 의가 좋은 형님과 함께 형님 집의 지붕을 새로 엮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남편을 불렀다. ‘마을에서 누구네 아버지를 데려다가 고문을 하면서, 니그 동네 누구누구가 어쩌냐 긍께로, 우리 시숙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남편 이름을 불러버렸어.’ 남편은 그 길로 상사 지서로 끌려갔다가 그날 밤 순천경찰서로 이송된 후 소식이 끊겼다. 


홍순례 씨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부모형제조차 끌려간 사람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3살이던 아기를 업고 무작정 길을 나서 목포교도소로 갔다. 밤을 새며 명단을 확인했으나 남편의 이름은 없었다. 다시 ‘죄인들이 많이 갔다는 소리만 듣고’ 대전형무소로 갔다. 거기에 남편과 같이 끌려갔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 홍순례 씨로부터 용기를 얻은 마을 사람들도 면회를 갔다. 다달이 면회를 갔으나 6·25 이후 남편을 보지 못했다. 같이 끌려간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홍순례 씨는 25살 때 남편이 끌려간 이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마을 여인들은 모두  개가하였으나 96살이 된 지금까지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그 ‘남편의 흔적’인 아들은 엄마가 시집갈까봐 학교를 못 다니고 엄마를 지키다 3년 전에 세상을 떴다. 홍순례 씨는 현재 며느리와 함께 상사면 오곡리 오산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1948년 가을, 그날 남편이 지그 성 대신 끌려갔어. 
남편이 지그 성(형) 허고 둘이 참, 그냥 어떻게 산지도 모르게 좋게 살아. 근디 그 날, 옛날 지붕 이(덮)지요, 짚으로. 경찰이 와서 부르더라고. 그 길로 그냥 데리고 가불어. 나도 졸졸졸 따라갔지. 상사 지서로 끌고 갔다가 또 구루마로 순천으로 끌고 가. 그러고는 행방불명이 돼불었어. 그 길로 영 안 와불어. 

 

그때는 죄인 하나를 찾으려고 해도 누가 쏴 죽일까 싶어서 밖에도 못 나가
인자 통간에,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그해 겨울을 지냈어. 그 때 애기가 세 살 묵었응갑다. 그때는 죄인 하나를 찾으려고 해도 누가 쏴 죽일까 싶어서 밖에도 못 나가. 부모도 소용없고. 그래서 아무도 안 찾아. 이래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가 애기를, 그 쬐깐 간난이를 업고, 무조건, 목포형무소로 갔어. 거기서 하루 저녁을 자면서 서류 뭉치를 떠들러보고 찾아봐도 없어. 그 뒤에도 갔제. 또 가도 없어. 또 이래 놔둬서는 안 되겄다 싶어서 대전형무소로 갔어. 


나 혼자 그냥,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대전형무소에 죄인들이 많이 갔다는 소리만 듣고. 형무소에 가서 그 소리를 안 해야 헐 껀디, 여수반란사건에서 왔다고 그랬드니 없다고 딱 덮어불어. 그 안에 분명 있는디. 그래서 한 달 뒤에 가서 찾아봉께, 그 때는 인자 있어. 우리 동네 사람들, 항꾸네 간 사람들도 다 있고. 아리께 온지를 알았는데 못 봤다고 글드라고. 죄인이, 남편이. 


누가 때려 죽일까봐, 통 암도 부모도 형제간도 안 가니까 다 소용없고, 그래도 마누라밖에 없다고 하등마. 달마다 면회를 갔는디, 아무도 안 가. 나 혼자. 나 혼자만 댕겨. 총 맞아 죽을까봐 통 찾아보지도 않아. 안 무섭더냐고? 뭘 무서워. 남편이 형무소에가 있는디.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처음에 애기를 업고 갔는디 아들을 보듬어보지도 않아. 그 뒤로는 놔두고 다녔어. 한 해 지나고 6·25사변 난 그 달에, 애기를 데리고 갔는디, 애기 머리를 살살 쓰다듬고 들여다보면서 눈물을 참, 흘리드라고. 막 눈물을…… 지달리지 말고 애기 학교랑 보내라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무조건 죄가 없어도 있다, 그래. 
6·25사변 나고 면회가니까 대전형무소에 있던 죄인들 다 죽었다 그래. 그래서 남편이 죽은 걸 알았제. 어느 골짜기에다 무더기로 그냥 죽였다고 하대. 시신은 못 찾았제. 기일은 형무소에서 고무신 때우던 사람이, 죄인들이 들어온 거 나간 거, 죽은 거를 아주 정확허니 알등마. 우리 시어른이 알아봤지. 그래 남편이 죽은 날짜를 알았어. 

 

따악 아들 하나가 목에 탁 걸쳐가꼬, 모래밭에다 혀를 박아도 시집갈란 생각은 없어.
남편 돌아가고 어찌 살기는. 그작저작 살제, 어쩔 거여. 농사짓고 사는 대로 사는 거지. 솔직허게 말허자면 사는 게 사는 거여? 넘이 사니께 사는 거제. 


시집을 가? 애기가 있는디 어찌 시집을 간다요. 따악 아들 하나가 목에 탁 걸쳐가꼬, 그걸 보고 어찌.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나 가고나면, 니가 엄마 엄마 부를 건디, 누구를 보고 엄마라 헐 거냐, 그걸 생각하면 시집갈란 생각을 못해. 모래밭에다 혀를 박아도 시집갈란 생각은 없어. 친정 엄마도 시집가라고는 안 했어. 나가 엄벙덤벙 살고, 남자 생각이나 하고 그러면 모를까 나가 야무지게 하고 사니까 누구도 시집가란 소리는 못 했어. 갈 맘도 없어.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디, 니가 누구를 부를 거냐, 그걸 생각허면 요로콤 주먹 쥐고 시집 갈 맘이 없어. 


졸졸 따라다니느라 학교를 못 가. 나가 시집갈까봐 학교를 못 가네, 애기가. 용케 학교를 보내놓으면 끝나고 저 아래서부터 엄마 엄마 허고 부르면서 오요. 하믄, 효도하고말고. 지그 엄마뿐이 몰라. 엄마를 한 번도 안 떨어졌제. 

 

나 열여덟 살에 결혼을 했는디 남편이 나보다는 몇 배나 잘 생겨도 안 이쁘게 보여.
나 열여덟 살에 결혼을 했는디 어려서 해농께 어떻게 했는지도 몰라. 열두 살 차이가 나. 맘에 들지도 않았는데 부모가 시켜서 억지로 했어. 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시집오기 전에 그런 사람 없었어. 글을 잘 써, 나가? 처녀 때 일 년 만에 졸업시켜 주는 학교가 있어서 재를 넘어 댕기며 그 때 공부 조금 했어. 결혼을 해서 남편이 일본을 갔어. 1년 있다가 나도 갔는디 애기가 안 생겨서 다시 나왔어, 점쟁이가 고향에 가야 애기가 생긴다고 해서. 그때 생긴 게 내 아들이여.


  
나가 이제 뭔 헐 일이 있어. 죽을 연구나 허제.
여순사건 원망허제. 그걸 생각하면 막, 그냥, 뭣도, 아무것도 안 보여. 근디 누구한테 원망을 헐 거여. 이왕 돌아가신 거 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 사가꼬 묻어주면 더는 소원이 없어.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디, 남편 묘나 그렇게 좋게 써가꼬 남편 보듯이 글면 얼마나 좋아. 나도 이제 거기서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냐고? 많이 보고 싶지는 안 허고, 이상한 마음만 들지. 불쌍한 마음만 들지. 남편 이름이 뱅뱅 돌구만. ㅇㅇ,ㅇㅇ, 오ㅇㅇ여, 오ㅇㅇ. 아들 이름? 우리 아들 이름을 잊어불었네. 이때깔로 그 애기 하나만 보고 살아. 남편 흔적이지, 그거 애기 하나가. 애기 하나만 보고 그렇게 살았응께. 아들 이름 오ㅇㅇ. 아들이 먼저 갔어. 무답시. 

 

   
 

나 사진 찍어준다고? 머리 빗고 옷 갈아입고 올게. 나 저기 갈 때 놓을 그 사진 찍어줘. 이 옷으로 입었네. 이것이 나여? 아이고 요상도 허네.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있네. 뽑아서 가져다 준다고? 언제 올 거여.                                               

정미경 소설가
 

정미경 소설가 72109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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