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연 기자

 

“결식아동이 얼마나 많은데 동물한테 돈을 써?”


내가 동물단체에 기부하고 있다고 하면 처음 나오는 말이다. “내가 내 돈으로 내 마음대로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야?”라는 단순한 반박을 넘어 이제는 동물권을 언급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모든 나라에서 인권을 넘어 생명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약자에 대한 권리 신장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말하고 동물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면 아직도 결식아동이 많고, 기아가 많고, 고독사하는 노인들도 있는데 왜 나는 동물권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되묻는다. 왜 그런 문제들이 있다고 해서 동물 이야기하면 안 되냐고. 방금 나열한 사회적인 문제가 동물권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것들은 동시에 개선돼야 할 문제이다. 


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과격하게 말하자면 70~80년대 ‘못 먹고 살 때’ 구분법이다. 사람과 동물은 똑같이 생태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그런데 오히려 동물은 인간 때문에 생태 구성원으로 자격이 박탈되었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길들여져 반려동물로 살고 있고, 인간이 만들어 낸 환경파괴로 인해 야생동물이 멸종하고 있다. 2019년에 이 문제에 대해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니까 괜찮아’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명은 동등하다는 가치를 학습해 왔고, 그 가치를 충분히 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주의’는 더 이상 아무런 공감을 살 수 없다. 

 

특히나 자칭 생태수도를 표방하는 순천시에서 ‘인간의 문제가 동물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내가 순천에 살면서 항상 불편한 것은 이것이었다. 말로만 생태수도를 말하면서 동물은 쏙 빼놓고 환경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동물은 빼고 인간과 생태, 환경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는 아주 많고, 그 중 어떤 집단은 결식아동을 말하고, 또 어떤 집단은 동물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다. 이건 약자끼리의 대결이 아니다. 그저 같이 더불어  '잘' 사는 삶이 필요하다.

 

생명의 무게는 아무도 마음대로 평가할 수 없다. 동물권에 대해 말하는 사람에게도 “네가 말하는 가치보다 인권이 더 중요해”라고 말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인권을 넘어선 생명권이다. 좁은 식견으로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그런 거만함이라면 동물이 아닌 다른 약자에게도 분명 또 그 무게를 저울질 할 것이 분명하고, 그것 또한 옳지 않은 행동이다.

임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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