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조합원 한문학박사

 

지난 8월 17일(토) ‘2019 우리 순천 탐방여행’의 네 번째 행사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서 내리쬐는 8월의 햇살은 시원한 숲과 계곡 그늘로 얼른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는 듯했다. 

 

▲ 계곡에서 본 초연정

 

이를 화답하듯 버스는 빠르게 우리를 모후산(母后山) 자락 수청(水淸)ㆍ풍청(風淸) 월청(月淸)의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27호(1990.2.24.)로 지정되었다가, 문화재청에서 ‘명승 제25호’(2007.12.7.)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한 순천 초연정(超然亭) 원림이 있었다.

 

▲ 초연정

 

울창한 산림 속에 너럭바위를 담장 삼고 계곡 위로 축대를 쌓아 조금 널찍한 대를 만든 곳에 학이 날개를 펼친 듯 내려앉은 3칸 단층 기와지붕의 초연정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이 터는 원래 대광사(大光寺) 승려가 수석정(水石亭)을 지어 수도하던 곳이었다. 이곳에 청류헌(聽流軒) 조진충(趙鎭忠,1777-1837)이 그의 5대조 옥봉(玉峰) 조제형(趙濟亨,1640-1700)을 제사지내기 위한 장소이자 자신의 은거 지취를 위해 1809년에 초가를 지었다. 바로 위에 조제형의 묘가 있다. 이후 이 초가는 문중 제각(祭閣)으로 활용되었다. 조제형의 8대손 조준섭(趙俊燮)의 요청에 따라, 1890년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조진충의 물외(物外) 풍도를 반영하여 “초연정”으로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이 동생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이 편액 글씨를 썼다. 어느 날 양상군자가 왔다 간 뒤로 초연정 편액이 사라졌다. 그 군자에 대한 원망과 정자에 대한 미안함이 탐방 내내 마음에 걸렸다.

 

▲ 초연정 아래 계곡 풍경

 

초연정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시냇물을 베고 누우니, 그야말로 침류대(枕流臺)였다. 신선 세계에 올라 노니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 왕대사적 석각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평평한 면에 왕대마을 유래[王垈事蹟]가 적힌 바위가 보였다. 옛날 임금이 난리를 피해 이 마을에 머물렀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왕대(王垈 또는 旺垈)라 하고 유경(留京)이라 한다는 내용이었다.

 

▲ 송광사

 

선경을 즐기는 흥취를 허기가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식후경’이란 명언처럼 송광사 주차장 인근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속세를 벗어난 불교 수행의 공간 송광사를 둘러보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순천 시내로 들어와 팔마비를 보고, 문화의 거리에 있는 장안창작마을에서 수박으로 더위를 잠시 달랬다. 그리고 순천향교를 관람하는 것으로 이번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김현진 조합원 한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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